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번 작품은 지난 나의 작품과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이번 작품 또한 자기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시리즈가 내 안의 상처받은 과거의 나를 치유하기 위한 그림이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현재의 나를 상처에서 구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나는 내 안의 상처가 치유가 되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몇 달 치유되었다고 믿었던 상처가 되살아나는 한계를 경험해야 했고 마주할 용기 조차 나지 않는 ‘그 고통’을 다시 겪어야 했다. 치유? 치유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우리가 치유라고 일컫는 그것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다. 상처와 고통의 존재는 분명한데, 이것이 치유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가 치유라고 믿고 있는 그것은 단지 상처와 고통을 망각하거나 억지로 외면하고 그것도 아니면 시간 속에 흘려 보내버리고선 치유가 됐다고 믿어버리거나 자신을 속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치유의 존재에 의구심이 든 이상, 나는, 이제, 부당한 상처와 고통을 받지 않는 방법을 찾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올바른 분노’는 이번 나의 그림의 주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분노와는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이것은 적절한 부적절성이라 할 수 있는데 ‘적절한 부적절성’이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가치 기준이나 사회적 통념으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일이지만 보편적인 진리의 기준에서 볼 때 적절한 태도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분노’는 부당한 고통과 상처에 대한 정당하고 옳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나는 지금 건강한 치유를 위해 고통 받지 않기 위해 현명하게 분노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소재로 호랑이의 등장이유 – 호랑이는 우리에게 포악하고 두려운 존재기도 하지만 우리는 호랑이를 용맹하고 정의로우며 은혜를 갚을 줄도 아는 영물로 여기며 경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호랑이의 이중성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그 발단의 계기는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그 사람’의 띠가 ‘백호랑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 무늬는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된다. 하나는 부당한 분노와 또 하나는 올바른 분노.

박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