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Pool)의 바닥
Bottom of a Pool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갤러리와 작업실은 지나치게 나를 보호하였다. 작업만 하였던 4년간의 샌프란시스코와 L.A를 떠나는 2009년 비행기 차창 너머로, 난 머물렀던 곳이 그 곳이 아니라 인터넷 세상이었음을 보게 된다. 그 후 시간과 장소는 나에게 모호한 경계감의 집중할 수 없는 혼란과 상실감을 키워갔고 나는 오히려 이것을 지금 세상과 내 작업의 훌륭한 통로로 여기고 있다.
2010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아츠센터 프로그램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장소기록적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유튜브로 한국에서 촬영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의 이미지를 출력하여 물감을 뿌리고 말려 벗기고 빈 자리를 그려가며 표면을 채워가는 반복적 드로잉작업을, 온라인 캐릭터 이미지와 함께 아트센터의 풀(pool)에 설치하였다. 물감이라는 실재는 디지털 이미지 위에 그 바닥을 벗기고 긁어 그 자신을 드로잉 하였다. 내 몸은 그 실재의 빙의가 되어 현실에서 아름다운 도구로 쓰였다. 그 곳을 떠난 지 불과 2달 만에 지진으로 아츠센터는 폐쇄되었고, 그 고요한 위용이 내 작품의 일부로 살아남았다는 기록의 슬픈 진실을 본 후, 나는 오프라인의 이동경로를 촬영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고향 울산에서 서울까지의 기차풍경과 인도의 바로다(Baroda)에서 델리(Dehli)까지의 기차풍경을 촬영 편집한 비디오 작업을 하였다. 이것을 모티브로 목탄 드로잉과 디지털 프린트 드로잉들을 3차원 적으로 배치한 Fake Traveler라는 전시를 2011년 인도에서 하였다.
나는 2010년부터 시작된 장소 기록적 드로잉을 모티브로 이번 회화 전시의 제목을 결정하였다. 화가(painter)로서 그러한 작업방식을 다시금 작업실 안에서 재현하면서 무척이나 회의적이 되었다. 물감을 뿌리고 벗겨 바닥이 드러나 껍질만 남거나, 흰 물감을 덮은 후 미디엄(medium)으로 지워가며 남겨진 온라인 캐릭터의 이미지를 붓으로 캔버스에 옮기면서도 끊임없이 스카입으로 대화하는 나의 이런 모습이, 내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작업을 선두로 인도, 한국 그리고 또 다른 문화 지역으로 작업의 범위를 확장해 오던 그 가능성과 지진, 이념, 가족의 가치, 혹은 문화적 편견 같은 여러 종류의 내 개인적 상처를 훨씬 넘어서는 더 원대하고 아름다운 회화적 가치의 지향점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결국 내가 품고 만지고 느끼는 것은 색깔과 물질인데, 나는 작업을 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너무 관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여겼다. 모니터로 사랑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질만이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있고 이것이 내 회화에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보다 회화에 집중하고 싶다. 내가 비록 두뇌로 모든 현상들을 작품으로 유형화 시킬 순 없지만, 자연으로서 그 일부가 내 작품과 함께 한다면 구글 어스를 뒤지며 추억을 쫓아다니는 온라인의 나약함을 뛰어넘을 수 도 있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결국, 문화는 불변의 완성형이 아니고 기록의 진행형이다. 그 허무한 기록 속에 내 회화가 하나의 진실한 물질적 자연이 되기를 희망한다.

배희경 (Hee K. B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