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공간 그리고 시간의 유니트(Unit)


  하나의 작품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함은 어떤 것인가? 또는 작품으로서 스스로 존재하게 되는 순간, 혹은 지점은 언제일까? 2002년 형광등으로부터 시작한 빛 작업을 시작으로 2007년부터 LED를 채택하여 김지아나가 독보적으로 개척해나가고 있는 장르 복합적, 매체 융합적인 일렉트로-세라믹 작업의 진화 과정을 지켜보면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그것은 이 작가의 작품이 켜지는 순간, 빛 줄기가 주는 색의 충격과 심플하면서도 견고한 금속 프레임에서 풍겨 나오는 감각 만으로는 작품의 진가를 알아채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작업의 제작에 착수하기가 얼마나 무모할 정도로 복잡하며,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수공 작업과, 역설적이게도 치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한 전자회로와 빛의 색과 밝기, 움직임 등을 제어하기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의 최첨단의 기술을 합쳐가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비물질적 요소와 질료의 조응이 점점 단순한 형태로 수렴되고 단일한 작품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는 지를 알 수 있게 된다면 김지아나의 창작통을 받아들이고 또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 단순함 속에 감쳐진 미궁 속 같은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다시 우리를 작품 앞으로 불러 모우게 하여 수면 아래 침잠해 있는 비밀의 코드를 그야말로 천천히 해독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전자 시대의 첫 번째 전성기를 거치며 성장, 활동하는 세대인 작가에게 있어서는 다른 분야에서도 그러하듯이 그 동안 작업의 주된 소재였던 세라믹과 전자 예술의 연결 지점을 모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디바이스가 일상화 된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진화는 새로운 자연계를 구축하고 있다. 감성을 드러내는 작업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 감성의 키워드는 바로 전자적 빛이다. 빛을 담는 그릇의 근원적 재료로 흙을 선택했고, 빛을 투과나 반사가 아닌 머금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퍼블릭 아트> 3월호 전시 리뷰를 통해서 지난 2월에 환기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개인전에서 선보인 대작 ‘빛의 폭포’와 ‘호수에 비친 달’ 등을 두고 그녀의 작품의 경향을 일렉트로-세라믹이라고 명명한 바가 있다. 색의 역동적 움직임에 대하여 언급하였음을 상기해 보자면, 디지털 코드를 근원으로 하는 색의 면은 동시에 외부로부터 오는 빛과 합쳐져서 독창적인 색의 향연을 우리가 서있는 공간 속으로 장엄하게 내뿜는다. 갤러리 공간의 표면은 작품들로부터 쏟아지는 빛의 색으로 완전히 물들고 아주 천천히 변화한다.
  특히 전자 회로에 기하 추상적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래밍된 색면 이미지를 출력하는 세라믹 스크린은 흙과 불(빛)이라는 자연의 원소가 결합하여 변성해 낸 인공 물질이며, 절묘하게도 강한 빛을 머금으면 더욱 더 투명해진다. 또한 회화적 표면은 작고 얇은 세라믹 조각들이 붓질처럼 서로 자연스럽게 겹치며 화면에 비늘처럼 덮여 있어서 유발되는 간섭과 착시의 게슈탈트 그루핑 효과로 인해 우리의 시선이 조각들의 갈라진 틈 사이로 쫓아 들어가게 한다. 온 감각을 동원해 화면 너머의 공간에 대해 탐색하려는 시도는 결국 비물질성에 의해 망막 위에서 추상화되어 버린다.
  그런데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기하학적 형태의 이미지에서 변화를 꾀하며 일상성을 더하는 또 다른 시도를 보여준다. 일상적 만남을 어떻게 시각 이미지화 할 것인가를 화두로 던지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발표하는 <City>시리즈에서는 드라이빙 하는 동안 작가의 시야에 늘 들어오는 한강변의 도로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대의 광선과 대기가 자아내는 분위기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의 재현 방식과는 다르게 프로그래밍하여 화면에 담았다. 그녀의 붉은 색과 노랑, 오렌지 색을 오가는 선과 면의 신호는 마치 비에 젖은 강변로를 질주하는 듯 하다. 또는 수면에 반사되어 대칭으로 어른거리는 다리로도 보인다. 도시의 사람들이 힘든 일상 중에서도 문뜩 돌아보면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파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의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절대적인 우주적 세계로부터 살짝 빠져나와서 재현의 언어를 빌어 관객과의 소통의 물꼬를 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사진이나 영상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에 대하여 탈코드화 된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쌓거나 더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보기에는 부드러우나 실은 아주 견고한 단색조의 그림은 빛과 만나 움직이는 색과 면이 된다. 여기서 움직임이라 함은 형상이 외형을 변해가는 것은 물론이고 카멜레온처럼 표면의 채도도 함께 변한다는 것이다. 약 8분 동안 이 작품들은 우리가 거의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서서히 색상이 전환된다. 그 움직임의 이미지 실체는 물론 그녀가 축적해 나가는 캔버스 드로잉 작업과 연결되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디지털 코드화된 이미지에 시간의 진행에 따른 움직임을 프로그래밍 한 것이라는 점을 다시 주목해 본다. 시각 이미지란 늘 형태라는 플랫폼에 고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사용은 이미지를 ‘유비쿼터스’, 즉 어느 곳에서나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즉 모든 사물-회화조차도-이 인터페이스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세라믹 조각이 픽셀로 대응된다는 점은 최근 새로운 건축의 경향으로 대두되고 잇는 미디어 아키텍쳐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지점이다. 역시 건축의 기술적 진보로 인하여 본래 종속적 관계에 머물러있던 건물의 구조로부터 외관과 외피가 보다 더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의 급격한 전환이라는 점이 공간의 외피에 보다 더 과감하게 자유롭고 장식적인 요소를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외피 자체에 대한 표현성은 현대 건축에 와서 다양한 실험적 접근을 보이게 되는데, 외피의 디지털 미디어화는 이러한 경향 중의 하나다. 주지하다시피 건축과 미술은 본디 한 몸과 같았다. 미술의 태생을 근원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얄타미라, 라스코 동굴의 장엄한 벽화들은 거주 공간의 벽을 장식하고자 하는 선사 인류의 욕구를 증언하고 있다.
  인간과 공간이 쌍방향으로 교류하며 반응하는 환경을 일컫는 ‘제4의 공간’은 디지털 미디어가 일상화 된 무한한 접속과 네트워킹의 공간이 체화된 것이다. 이렇듯 현대 건축이 제4의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김지아나의 작업이 보여주는 건축적 환경과의 친화성을 외피의 자체의 표현성에 대한 다양한 실험의 관점에서 주목하여야 할 의미가 더해진다. 작가의 꾸준한 연금술적 실험은 미디어 아키텍처의 새로운 감성을 발견하고 있으며 물리적 공간에 감성을 입히는 모듈 재료로써의 적용 가능성이 엿보인다. 즉, 마침내 공간의 새로운 표면을 형성하여 섬세한 외피의 개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지점에 도달하고 있어서 회화적 평면성을 벗어나 소통의 가능성이 열리며 공공성을 획득하게 되는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과 전진을 예감케 한다.

 최흥철(아르코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