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밤은 당신의 아침


작업은 설명되어지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자주 우연을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내 작업의 많은 부분이 우연과 우연들의 중첩에 기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연은 직관적이거나 충동적일 때 자주 일어난다. 하나의 우연에서 시작되어 작업에 빨려 들어갔을 때 종종 길을 놓치곤 한다. 꽃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어느 날 오후엔 인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본다. 스스로와의 다짐이 무너지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성향을 가장 거스르지 않는 방법임을 안 후로는 그렇게 내버려두는 연습을 한다. 오늘의 인물은 몇 달 혹은 몇 년 후에 완성이 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 오를 때 그것을 시간이라는 안전장치를 통과하여 그래도 하고 싶을 때 화면에 옮겨져야 비로소 그림들이 완성에 가까운 모양을 갖춘다.
나의 일상은 너무나 성실하다. 그러나 성실한 나의 일상과는 다르게 내 작업의 동인은 뜨겁고 운전되지 않는 격정의 덩어리다. 변덕스럽고, 괴팍하고, 때론 못 봐줄 만큼 어리석다. 이런 동인을 끝없이 유지시키는 일은 많은 인내를 동반한다. 인내는 성실과 더불어 나의 친한 친구다. 그것은 집착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감정이 변하는 건 원래 그러한 것이므로 기다리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열정, 그것은 화면으로 토해내어 지는 것이 많은 경우 바람직하다. 사람에게 열정을 투사했던 날들이 있다. 사람은 사람을 감당하기 어렵다. 열정은 사랑으로 때론 미움으로 집착으로 다양한 형태로 치환 가능하다. 그러므로 작업은 감당하기 어려운 나를 내가 운전하는 가장 선한 행위이다. 그리다 보면 감정들이 편편해지고 평정이 찾아온다. 평정을 지속하려는 노력이 작업이고 나도 모르게 슬쩍 작업의 모티브를 건드려 주는 것이 나의 모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