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Single Day

사람들이 그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결코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시공간이다. 이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은 해석하기에 참으로 어렵다. ‘비어있음의 사이’, ‘때의 사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공간에 대해서든 시간에 대해서든 해석과 규정의 다양성이 성립될 수 있어서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분야와는 달리 미술 자체의 존재이유를 공급하는 ‘재현(representation)'을 다루는 회화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재현은 일차적이고 사실적인 재현부터 이차적인 재현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의 재현, 방법의 재현 등 여러 층위를 갖고 있으나 ‘공간’과 ‘시간’과 같은 지칭 없는 대상을 ‘재현’하는 회화는 어떠할까?

정재호의 회화는 ‘시공간’을 재현한다. 즉 구상적이긴 하나 추상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정재호의 작품은 구상이 아닌 추상이라고 해야 맞을 듯한 것이다. 시트지를 이용한 웰 페인팅작업과 함께 유화로 제작한 회화작업을 꾸준히 해 온 정재호의 작품은 우선 사진의 시각으로 작업을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진을 이용하는 작업은 다른 많은 작가가 해 오는 일이라 이것이 특별한 점은 아니다. 단지 그는 사진의 시각성만 드러낼 뿐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전개를 한다는 것이다. 정재호는 일상의 공간을 카메라에 담아 작가의 ‘기억’과 함께 재조합한다. 담겨진 광경은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당시 작가의 감정, 느낌 그리고 뭉뚱그려져 있는 기억과 함께 비현실적 시공간을 회화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인공현실이 몸으로 그려진 회화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에서는 조금 더 작가의 개인적 기억들이 그려진다. 여전히 도시공간을 단순화, 패턴화 하고 있으나 구체적 장소와 시간을 나타내려 노력하고 있다. 어릴 적 자전거사고를 당했던 골목의 층계, 남자애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가 놀아봤을 허름한 공사장의 컨테이너박스 등. 우연히 시선을 던진 공간에서 떠오르는 예전의 구체적 기억들이 재조합되어 있다. 여기에 남겨진 큰 붓 자국은 회화의 냄새를 더욱 진하게 풍기고 있다. 이 조합된 이미지는 그때의 장소와 시간이 아닌, 또한 지금의 장소와 시간이 아닌 새로운 시공간이 되어 ‘새로운 오늘’을 보여주게 된다. 왜 새로운 오늘, 새로운 시간일까?

회화는 질문으로서만 존재한다고 한다. 회화를 바라보는 이들은 결론지어진 완결품을 보는 것보다 그 회화가 재구성하는 새로운 사건들안으로 자신의 기억과 경험들을 중첩시켜보며 그 대상과 호흡하려 한다. 인물이 배제된 정재호의 작품은 어쩌면 보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 되어 작품과 같이 하길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정(靜),중(中),동(動) : 고요한 가운데 어떤 움직임이 있음. 고요한 듯 정지되어 있는 평면에 우리가 들어가 손짓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들이 있는 것, 이것이 회화의 맛이 아닐까.
또한 회화가 지금 현대미술과 멀어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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