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유사성 (family resemblance))

이 년 반 전쯤 내 딸 채령이가 태어났다. 그녀의 친가와 외가 즉, 나의 본가와 처가를 통틀어 처음으로 태어난 손주이니 양쪽 집안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그 아기의 탄생을 기다렸는지는 (감히 탄생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나흘간의 진통 끝에 어렵사리 세상에 나온 아기의 분만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던 나는 (이 상황에서 아빠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의사가 건네준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 일밖에 별로 없었지만) 시뻘건 핏덩어리 같던 아기가 첫 울음을 터트리고 피부색이 서서히 루벤스의 그림에 나오는 아기천사처럼 빛나던 장면을 지금도 생생한 감동으로 기억한다. 각설하고, 양가의 부모님과 친지들이 아기를 처음 대면하고 품에 안고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저마다 닮은 구석을 찾아내며 한 마디씩을 했다. 눈은 엄마를 닮았네, 코는 어릴 적 지 아비랑 똑같네, 뒷 머리카락 없는 것은 영락없는 할아버지네 등등 말이다. 그렇다. 가족끼리는 닮았다. 부모님 댁 서랍장 위에 놓인 액자 속 사진의 어렸을 적 내 모습과 내 딸의 현재 모습은 어느 구석 묘하게 닮아있다. 이것은 내 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가족들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디 한군데라도 닮지 않은 가족은 없다. 가족 구성원은 서로 완벽히 똑같지는 않지만 A와 B는 어디가 닮았고, B와 C는 또 어디가 닮았고, C와 D는 다른 곳이 닮는 식으로 모두가 공통되는 특징은 없지만, 서로 교차한 유사성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그들을 가족으로 인식할 수 있다.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에 유래한다. 모든 표상이 공통의 논리적 형식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이 개념의 예로 그는 언어와 놀이를 든다. 모든 놀이와 언어에는 모두를 아우르는 일반적 특징은 없다. 어떤 두 가지 놀이에 공통된 규칙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놀이와는 아무 규칙도 공유하지 않는다. 보드게임과 카드놀이 공놀이 싸움놀이 등은 하나의 공통된 분류학적 규범을 가지지 않지만 이른바 가족유사성에 의해 하나의 가족으로 묶인다는 말이다. 방금 전 어린 시절 사진이야기를 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이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은 사진이라는 매체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한다. 물론 그 이전부터 초상화가 있었지만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이미지를 기록하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이 개념의 성립에 중요한 상황적 조건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애니메이션 (animation)

애니메이션 하면 어렸을 적 TV나 극장에서 즐겨 보았던 만화영화가 떠오를 것이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anima 즉, ‘영혼’과 ‘살아나게 하다’라는 의미의 animatus이다. 정지된 사물이나 그림을 살아나게, 즉 움직이게 만들려는 시도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리라. 알타미라 동굴의 다리가 여덟 개인 멧돼지 벽화나 레슬러의 움직임을 마치 셀 애니메이션 필름처럼 일렬로 묘사한 고대 이집트의 벽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회전하는 원통형의 초창기 애니메이션 장치인 조트로프 (zoetrope)의 원리를 이용한 작업을 해왔다. 조트로프는 19세기에 개발된 것으로 회전하는 원통의 안쪽에 하나의 시퀀스를 이루는 단순한 동작의 그림을 붙여 틈새를 통해 바깥에서 보면 그림들이 잔상효과에 의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이다. 나는 턴테이블과 프로젝터 비디오카메라 그리고 돋보기와 같은 원시적 광학장치를 이용해 조트로프를 제작하고 그림대신 여러 장의 사진을 원통 안에 일렬로 배치했다. 이 사진들은 닮은 얼굴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터넷에서 찾아낸 나와 닮은 사람들의 얼굴이거나 핀홀카메라로 촬영한 파노라마 풍경 사진 등이었다. 이 때 조트로프는 이미지를 움직여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서로 다른 장소의 풍경이나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뒤섞이게 하는 효과를 위해 사용되었다. ‘가족+조트로프’ 라는 이번 작업에서 모터에 의해 회전하는 원통 바깥 면에는 나의 가족을 포함한 38가족의 248명 구성원 얼굴사진이 붙어있고 회전에 의해 중첩되는 이미지를 상하로 천천히 이동하는 비디오카메라가 프로젝터를 통해 벽면에 투사한다. ‘가족+나무’ 라는 작업에서는 내 딸을 중심으로 친가, 외가 직계 조상 15명의 초상사진을 가계도(family tree)의 형태로 벽에 설치하였다. ‘가족+얼굴’은 위의 ‘가족+나무’의 열 다섯 명 얼굴들이 조트로프에 의해 겹쳐 보이는 것처럼 만든 영상작업이다. 점점 빨라지거나 느려지며 교차하는 각각의 얼굴들 사이에는 가족의 유사성을 특징지으며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가 있으리라. ‘륜(侖)’이란 한자는 대나무 조각들을 엮어 글씨를 쓴 책을 나타낸 ‘책(冊)’자와 ‘모으다’는 뜻의 부호가 더해져 ‘뭉치’ 혹은 ‘둥글다’는 구체적인 뜻과 ‘조리 있게 생각하다’, ‘순서를 세우다’라는 추상적인 뜻의 말이라 한다. 이것에 ‘사람 인(人)’을 더해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려 살기 위해 함께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의 ‘차례 륜(倫), 혹은 인륜 륜(倫)이 되었고, 수레 거(車)가 더해 ‘잘 어울려 단단히 엮인 수레의 바퀴살’을 뜻하는 ‘수레바퀴 륜(輪)’이 되고, ‘말씀 언(言)’이 더해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경우 있고 조리 있게 잘 어울리도록 하는 말’이라는 뜻을 나타낸 ‘말할 론(論)’이 되었다 한다. 사물의 형태를 본뜬 그림에서 출발해 뜻글자인 표의문자로 한자가 발전했다고 한다면 내가 만든 작업은 무슨 자가 될 것인가? 이미지가 텍스트로 완전히 치환될 수 있는가 (혹은 반대로)라는 고전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내 범위 밖이고, 내 작업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