聽林


모두는 각각의 삶의 무게가 있고, 반복되는 일상적인 삶을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살아간다. 일상에 젖어 지내다 보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이 커다란 물결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처럼, 혼란속의 작은 물음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커다란 파장으로 바뀐다. 일상에 너무나 익숙해져 느끼지 못하다가 이러한 파장이 커지면 스스로를 슬며시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기 위한 공간을 찾아가게 된다.
이는 마치 자연의 품을 찾아 속세를 떠난 은자들처럼 복잡한 삶을 잠시나마 놓고 나를 보기위한 공간, 林을 바라보게 한다.
동양의 유기적 세계관은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동반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동양적 관점에서 인간은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없으며, 인간 자신이 자연의 일부, 곧 자연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동양적 관점에서의 이상적 삶이란 자연 상태의 회복이며 자연에 대한 인위를 줄이고 인간 자신의 욕망을 적게 함으로써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양적 사상이 본인이 생각하는 자연관의 기본이 되는 것이고, 편안한 휴식을 주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공간인 松林의 기운을 작품을 보는 이와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松林은 대자연의 순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와 다름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본인에게는 매번 웅장함 속에 편안한 인상이었다.
언제든 뒤돌면 받아줄 든든한 버팀목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도 편안하고 익숙한 松林이 찰나의 순간 낯설어 지고, 처음 본 듯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아니라 반대의 입장이 되어 낯설다.
스스로를 내려놓고 돌아보며 편안했던 공간이 주변의 소리를 듣고, 성장통을 겪으며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불편함, 익숙하지 않음, 다름의 또 다른 관심이다.
<聽林>은 귀 기울여 숲을 듣는다는 표현이다. 松林을 맞이할 때 들리는 바람소리, 솔잎을 밟을 때 들리는 소리, 진한 솔향이 느껴지는 바람의 냄새, 숲 사이로 하늘을 보는 시선 모두를 포함한다. 느껴지는 인상이 바뀌니 표현의 방식도 바뀐다.
이전의 스스로를 돌아보던 표현에서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松林 안에서 스스로를 들여다 보고, 다듬고 보듬던 작은 시각이 한 걸음 나아가 크게 멀리 보는 관조적 입장으로의 변화이다. 타인과의 간격, 거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함에 따르는 익숙하지 않은 낯설음의 표현이다.
바라보는 시각과 사고, 주어지는 상황과 관계의 모든 것들이 고이지 않고, 변화해 감을 인지한다. 익숙함과 편안함이 주는 안락함보다 약간의 불편함과 간격의 넓고 좁음이 필요함을 알게 됨이 ‘聽林’으로의 표현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