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여년이 훌쩍 지났어?

전시 제목은 마치 우디 알렌의 <돈을 갖고 튀어라!> 나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또는 영국 영화 <트랜스포팅>을 떠올린다. 그러므로 이들의 나이나 작품이 매우 젊고 신선하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느낌을 팍 준다. 그러니 이들의 작품에 대해 때 이른 분석이나 평은 말 그대로 때 이르다. 나는 다만 이들의 전시를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 대한 내 나름의 감상과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았다.

돌아보면 우리가 동유럽, 북미, 중국, 일본 등의 독특한 애니메이션들을 접한 충격의 80년대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그 이전에는 접한 적이 없었던 실험적인 예술애니메이션을 통해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애니메이션은 실존적인 삶의 경험과 비전 또는 꿈과 환영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예술장르가 되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는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새로운 예술과 오래된 예술, 국내와 국외, 장르와 장르가 분출하고 경합하고 넘나들기 시작했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우리의 안목과 식견이 비약적으로 확장되고 심화되었다.

80년대 말부터 이렇게 좌충우돌하며 확산되고 내달리던 문화가 90년대 말 IMF와 함께 급정거를 한다. 90년대 말부터 예술은 물론 모든 것은 경제적인 생산성과 효율성과 미래 우리의 먹거리를 해결하는 문제로 환원되기 시작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IMF이후 세상은 진짜로 멈추면 죽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 시기는 세계화와 국제화와 신자유주의가 슬로건이자 내면화된 이념이 된다. 이런 이념들과 밀레니엄이 결합하여 새천년으로 들어섰고 그 이후 이제 10년이 지났다. 나는 결코 만화나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아니다. 단지 오래시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고 관심을 잃지 않으려한 아마추어일 뿐이다. 그러나 전시기획자의 시각에서 볼 때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둘러싼 담론이 자본과 시장가치의 담론과 결합한 순간 이 분야 또는 이 장르가 참 재미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원시 동굴벽화에서 기원한 가장 오래된 형식이자 가장 최근에 예술이 된 이 분야가 어쩌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의 일꾼이 되어버렸다. 꿈과 상상과 비전은 어디로 사라지고 단지 허울뿐이 말과 슬로건만이 남아버린다. 2000년대 들어서 정부의 신산업으로 정책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전개된 기획들의 결과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처참하게 제 모습을 잃어버렸다. 창의적인 만화가들과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이런 환경변화에 어리둥절하며 신속하게 패배자가 된 것처럼 보인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밀어 붙이는 각종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기 위해 마치 이벤트 기획안처럼 쇼가 되었고 영화산업과 판박이처럼 유사해졌다. 무수한 대학한 산업, 비즈니스 현장에서 우리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고유의 감각과 정서, 미학을 찾을 수 있을까?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이 분야는 말 그대로 지난 20년간 정신없이 달려왔다.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을 복용한 후 도달하는 절정의 순간을 ‘Rush’라고 표현한다. 몸과 마음이 현실을 떠나 무아지경의, 말 그대로 뿅 간 상태가 된다. 마치 뭐에 홀린 것 같다. 전문가가 아닌 이들 마치 중요한 키를 쥐고 이리저리 휘두른 것들에 휘둘린 것 같기도 하다. 근래 창작만화와 애니메이션, 전시들이 획기적이라거나 감동을 주었다거나 성공적이었다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되었다. 해외에서 수입된 작품들이 마치 주인인양 자리를 꿰차고 있다. 주위는 상투적인 스토리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소설을 읽는 듯 문학이나 드라마가 된 만화와 애니메이션들이 넘쳐난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뽀로로’와 같은 유아들 대상의 애니메이션들이다. 그리고 또 뭔가 있는가? 여전히 미국과 일본 등 만화선진국들의 하청을 받는 산업구조가 바꾸지 않고 있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평생의 취미이자 업으로 삼은 이들 가운데에서 나오리라고 분명하게 느낀다.

예술애니메이션 또는 언더그라운드, 실험, 인디 애니메이션 뭐라 불러도 상관없다. 국립공주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과의 순수애니메이션그룹 ‘멈추면 죽는다’의 '멈추면 죽는다'를 통해 말하려는 것이 앞서 내가 느낀 것들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사실 잠시 멈춘다고 죽지는 않는다. 다만 사는 게 재미없게 된다는 것이지.

김노암(상상마당 전시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