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초월한 공간 여행


나는 일련의 드로잉과 페인팅의 평면 작업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공간 여행자가 되어 우리 모두의 삶을 지배하는 순환의 과정을 바라보는 개인적 관점을 표현하고자 의도한다.

길을 가다, 혹은 여행 중 마주치게 되는 건축물들은 나의 개인적 감정이 이입되며 특별한 존재로서 기억되곤 한다. 그러한 건축물에 대한 공간 경험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가시적, 그리고 비가시적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건축물들이 빈 공간에 세워져 새로운 공간을 이루고, 그 고유의 역사를 간직한 채 점차 쇠락하여 사라짐의 단계로 진행되어 가는 과정은, 모든 사물과 현상에 부여된 반복되는 순환의 현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순환의 개념을 이미지화하기 위해, 나는 개인적 경험에 의해 특별한 관계가 이루어진 건축물과 그 공간뿐 아니라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 조형물의 자료를 작품에 차용하며, 거기서 시간의 흐름을 본다. 나아가 이들과 함께 주변의 사소한 사물들을 화면 위에 조우시키면서 그들만의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동양 철학에서 언급되는,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며 정리된 오행의 순환 원리와 연결하여 그것의 기본적 요소를 상징하는 오브제나 도형, 혹은 색을 작품에 적용한다. 즉, 나는 작품에서 모든 물질적 및 비물질적 존재나 상황을 생성, 성장, 쇠퇴, 소멸, 그리고 재생성으로 반복되는 순환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형상화한다. 이와 같은 현상을 확장되며 반복되는 “spiral”로 보며, 나는 그러한 과정을 수동적으로 받아 들이는 반면, 작품 위에서는 스스로 능동적 주체가 되어 순환의 과정에 개입을 시도하기도 한다. 아울러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부동하는 원형으로 상징되는 존재에 관한 열망도 작품에서 다루게 되는 부분이다.

한편, 나의 작품을 조형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선, 색, 평면성의 특징을 들 수 있다.

작품에서 선은 이어짐의 여지가 있는 형태를 취하며, 그것은 화면의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사물의 독립성을 존중하기 위한 윤곽선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매우 치밀하게 계산되어 작품을 구성하는 선은 경직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선이 가진 강약의 변화가 주는 여운은 이어짐을 상징한다.

이러한 계산적으로 측정된 선과는 달리 그림에 사용되는 색은 직감에 의해 선택된다. 내가 색의 사용에 있어서 중요시하는 것은 화면의 공간과 오브제들의 주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때로는 보색을 사용함으로써 화면에 긴장감을 유발하는 동시에 선의 사용으로 인해 그것의 화해를 이끌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선과 색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많은 설명이 생략된 평면적 형태로 그려진다. 내가 사물의 묘사를 단순화하는 이유는, 기본적 형태를 취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의 본질과 그것의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나는 작업을 통해, 실질적 공간과 사물의 형상을 바탕으로 이상을 추구하는 관념적 공간으로의 끊임 없는 여행을 한다.


이 승 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