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고르카 모하메드 : 회화의 태동
고르카 모하메드의 작품은 비판적 불경함이 수반된 열정적 노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다른 곳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무수한 역사적, 형태적, 개념적인 틀을 통해 암호화된 그의 미학에는 이질적 요소들이 넘쳐나며, 이러한 요소들은 작가가 지닌 독특하고 모호한 시각 속에 응결된다. 예를 들어, 작품 ‘자동장치(Automatons)’(2010)를 보면, 모하메드의 회화적 감수성에 필립 구스통이나 짐 너트의 영향이 매우 복합적으로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역설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감수성은 여전히 진실되고, 뚜렷한 자기 지향점을 담고 있다. 이들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모하메드의 화풍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한다. 마치 지구를 둘러싼 달이 제 모습을 바꾸며 형태를 변화하듯, 그의 작품 안에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담겨져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매우 정교하고도 명쾌한 다색의 향연을 선보인다. 이러한 삼차적인 보색성은 보는 이에게 시각적 혼동을 일으키는데, 탁월한 기교로 인해 이를 단번에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자동장치’ 작품의 기본 구성을 살펴보면, 불길하면서도, 정적이 흐르는 듯한 그림 속 전함의 배경은 회색으로 처리되어 있다. 여기에 불투명한 배경과는 전혀 다른 강렬한 색채로서, 망막 조직들을 층층이 놓아 두었으며, 이러한 겹겹의 작업 위에 작가 특유의 다양한 색감과 형태를 표현해 내고 있다. 그림에 나타나는 각 색채의 흐름은 더 구체적인 형상을 갖춘 질감(마띠에르)으로 전환된다. 구불구불한 선들은 풍성한 필체로 변화하고, 단숨에 그려진 듯한 큰 획의 색조는 우리 눈 앞에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화해 간다. 모하메드의 작업은 순수 추상 분야에 속해 있지만, 사실상 작가의 시각적 시상(詩想)은 비구상과 구상 간의 경계에 놓인 회화적 탐험이기도 하다. 더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유기적인 형태들은 형상과 반형상의 사이에 존재한다.

‘Painter’의 작가로서, 모하메드의 형상/반형상에 대한 변증법은 ‘의인화’의 개념으로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단순한 면이 있다. 의인화는 대립점, 즉 비구상의 극단을 오가는 과정에서 차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척 클로스가 파편을 사용하듯, 그는 선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통제된 광기를 표현한 형태이든, 혹은 더 큰 단위의 대립된 색상의 덩어리이든 간에, 모하메드의 선과 그에 수반되는 무정형의 배열들은 좀 더 큰 회화적 게슈탈트(형상)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형들은 전문적으로 매우 뛰어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마치 우연에 의해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소위 후기구상주의 작가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만하다.

후기 구상주의는 형태가 폐기되거나 혹은 다른 어떤 미지의 것으로 변형되는 하나의 예술로 정의할 수 있는데, 여기서 미지의 요소(X factor)란 어떠한 형태 옆에 놓인 또 다른 분신(도플갱어), 신체가 없는 형상, 혹은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등을 의미한다. 후기 구상주의는 특정한 스타일이다. 이에 속하는 초기 작가들로는 세실리 브라운, 리사 유스케이바게, 제니 샤빌, 존 큐린 등이 있다. 비록 소수이긴 하나, 이들은 1980년대, 이젤과 붓 하나로 침체된 회화계에 도전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장본인들이다. 이 작가들은 형태를 강조하며, 여타의 사회적 논쟁을 끌어올 만큼 변형된 작품을 탄생시켰는데, 종종 개념적 논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유스케이바게는 저급한 소위 ‘소녀취향의’ 잡지를 그녀의 유명한, 극단화된 여성의 이미지로 전복시켰다.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매우 풍만하고 관능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과장된 듯한 이러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를 폄하하는 이들만큼이나, 지지자 또한 생겨났다. 그녀의 실리콘 회화 작품인 롤리타는 마네의 올랭피아(1863)를 전승한 것으로서, 정치화된 자기투영을 통해 기존의 남성적 시각에 균열을 가져온 작품이다. 한편, 제니 샤빌은 루시앙 프로이드나 프랜시스 베이컨을 포함하여, 남성 호르몬이 가득한 근육을 그리는 작가들에게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아울러 브라운은 빌렘 드 쿠닝의 여성형을 무단활용하며, 이를 여성 본능적인 것으로 변모시켰다. 존 큐린 역시 커리커쳐에 가까울 정도로 매너리즘적 의식을 과장함으로써, 작품 속 형상을 최대한으로 변형시켰다. 고르카 모하메드 역시 구스통이나 너트를 넘어, 조지 콘도나 알베르트 올렌과 마찬가지로 형상을 비틀어 작업한다. 예를 들면, 이것은 작품 ¹‘Painter’(2010)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¹Painter(2010)

‘페인터’는 마치 길을 잘못 든 바로크 작품처럼 기묘한 분위기로 우리를 유혹한다. 작품의 제목 자체가 정면으로 묘사된 한 예술가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모하메드에게 이 작품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회화의 알레고리(1666)’에 상응하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림의 중앙 전경으로부터 내려뜨린 커튼, 베르메르의 작품에서는 화면 앞쪽에 있던 의자. 모하메드는 지금 그 의자에 화가 자신 혹은 변형된 자아로서 앉아 있다. 모하메드의 대리인은 벨벳과 레이스, 실크를 걸치고, 한 손에는 담배를 든 채, 마치 달변가인 양 우리를 응시한다. 그는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를 만나는 버거 댄디 같이 일종의 포스트모던적인 도회지 멋쟁이 같다. 모하메드의 예술 세계에는 유머가 풍부하다. 그러나 그의 유머는 엉뚱하거나, 기묘하다기보다는 지옥을 이야기하는 단테의 ‘신곡’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모하메드의 날카로운 사회적 비평이나, 그가 미학적 범주 내에서 바라보는 인간 사회에 관한 통찰은 이른바, 형태와 개념을 갖춘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바로 작품 ¹‘침입(Intrusion)’(2010) 이다. 이 작품은 페르낭 레제의 도시의 모략이나, 혹은 초현실주의자인 프랑시스 피카비아의 성심리학적 메커니즘과 매우 흡사하다. 모하메드의 현재 작업과 향후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러는 “회화: 경계와 이동(2001), “회화, 세상의 끝에서”, “문제의 회화” 등의 타이틀이 붙기도 했지만, 지난 10년간의 전시 속에서의 그는 어떤 한 가지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어 온 작가가 아니었다.

²Intrusion (2010)

새로운 뉴미디어에 직면해서, 회화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길을 모색해 왔다. 오늘날 붓과 이젤은 완전히 새롭고, 활력 넘치는 그 무엇으로 다시금 태어나려 한다. 모하메드의 예술이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로지 집중해야 할 중심만이 있을 뿐이다. 늘 변화무쌍하며, 끝없이 변해가지만, 언제나 회화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오고, 가기를 반복하는 것, 그것이 곧 그의 예술 작업이 아닐까.

라울 자무디오 (Raúl Zamudio) 뉴욕


* 라울 자무디오(Raúl Zamudio /미국) 멕시코 출생. 콜롬비아대학, 뉴욕주립대학에서 미술사 전공. 현재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이자 미술비평가. 2005베니스 비엔날레, 2008서울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큐레이터. 미국 예술가 네트워크 수석큐레이터, 뉴욕 화이트 박스 갤러리 디렉터, DIVA 디지털 미디어아트페어 큐레이터 등 역임. 미국, 유럽, 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전역에서 50회 이상의 전시를 기획. 아트 매거진 아트 넥서스(Art Nexus)와 플래쉬 아트(Flash Art) 에디터, 150편 이상의 전시서문과 비평문 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