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NDS


흔한데다가 가공이 수월하고 부드러우며 칼로 깎으면 표면이 아름다운 나무의 고유한 성질은 오랫동안 조각가들이 이 재료를 사랑해 온 이유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창조한 화공물질로는 아직 나무의 장점을 대체할 수 없기에 그것은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일 뿐 만 아니라 여전히 현대 예술의 주요 매체로써 각광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무는 지구의 땅 대부분에서 군집을 이루어 서로 다른 생명들이 어울려 살아가도록 생태계의 터전인 숲을 제공해준다. 심지어 바위 위에서라도 강렬한 생명력으로 뿌리를 뻗어나간다. 이 나무는 도시 공간 속에서 자연을 재현하는 일상의 오브제이지만, 그 줄기를 목재로 가공하고 거기에 수공구나 기계를 사용하여 뛰어난 기예를 불어 넣게 되면 인공의 사물로 바뀌고 예술품이 된다. 신년식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나무의 고유한 자연성을 되살리거나, 혹은 예리한 도구를 사용하여 결을 다스리며 능숙하게 목재를 다루는 수공예적인 가공이라는 양자적인 가변성을 다루는 것이다.

신년식은 이번 전시에서는 목재의 우수성을 유지하면서 가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물성을 변형시킨 산업용 건축 규격 재료, 바로 합판을 새로운 재료로 선택하였다. 오목한 홈을 예리한 끌로 긁어내고 매끈하게 다듬어서 수공의 흔적을 지우고 반복 형태로 만든다. 그는 재료가 지시하는 대로 목재의 내피를 칼날과 톱을 정교하게 다루어 재료가 이루는 볼륨과 형상을 불어넣는 대신 원하는 크기와 형태를 기계처럼 정확하고 예리하게 기하학적으로 가공하여 표면에 떠오르는 원형 기호를 새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표면에 그가 자연의 현상에서 직관적으로 떠올린 색면을 딱딱한 전면에 입힌다.

합판에 새겨진 원형은 미세한 요철면을 굴러가는 굴렁쇠 바퀴이거나 해와 달 같은 우주적 천체의 교차의 순간에 느껴지는 진동의 궤적이기도 하다. 원을 가둔 사각형의 기호는 땅과 하늘의 형태를 네모지고 둥글다는 전통적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형태로, 엽전이나 대표적인 전통 목조건축과 가구 장식 등에 빈번하게 반복되는 상징적인 기호이다. 작가는 이 같은 상징을 다양한 비례의 입체로 변형시키고 있다. 원형 형태가 뿔처럼 길게 돌출되거나 두 개의 링(Ring)이 결합되는 식으로 말이다. 바로 그가 옛 가옥의 오래된 공간을 맞물려서 구조적으로 떠받히던 목재들을 해체하여서 새로운 형태로 재구축하는 것처럼 말이다.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그 유명한 토루소가 나무의 줄기 부분임을 알고 있듯이 모든 생명력 있는 사물의 본질적 요소로 축소될 수 있다고 믿어 온 20세기 미술의 역사가 있다. 1926년 뉴욕 세관원이 그의 모형 하나를 조사하고 기계 수입 관세를 매겼다. 언뜻 보기엔 프로펠러 같은 고광택 기계부속 같은 금속 조각-일명 공간의 새-은, 법정까지 가서야 실제로 실용성 없는 확실한 조각 작품이라는 판정승을 받았다. 이와 같은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신년식의 쓸모를 알 수 없는 이 오브제들을 작품이라고 판정할 수 있음으로 해서 형태를 따르는 초현실주의와 나이브한 모더니즘의 고전적 태도에 대한 그의 묵시적인 저항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잡게 될 것이다.

표면의 틈새를 통해 우리는 경직된 모더니즘에 반발하는 아르테 포베라 작가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가 나이프를 들고 캔버스에 달려들어 단일한 색이 칠해진 이것들을 과감하게 찢고 뚫었던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폰타나는 화면의 틈과 구멍을 통해 그 너머 공간을 지각시키고 있지만, 우리는 신년식 작품 표면의 둥그스름한 홈을 통해 목재라는 물질의 내부를 인식하고 속성을 지각하게 하며, 움직이는 듯한 비물질적 현상을 망막에서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스텔라(Frank Stella, 1936~)의 화면을 물감이라는 물질의 평행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한 선으로 덮은 세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 작업의 조각적 변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로 작가가 제시한 ‘Bands’의 의미하는 바를 재고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색과 형태를 가진 신년식의 작품들은 이제 놀랍게도 더 이상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 비밀은 그가 천연의 자연스러움과 그것을 재현한 인공, 네모와 원, 하늘과 땅처럼 각각 대조적으로 다른 부분이었던 것들을 동시에 한 묶음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터로 향하는 한 무리 군대나 월드컵에 나서는 축구팀처럼 치열한 승부를 가려야 하는 무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단한 결합이다.


 최흥철(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