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으로 재구성한 사물



 눈으로 보고 상상하는 세계는 20세기 초의 유명한 생물학자인 존 B.S 홀데인의 말처럼 본질의 세계와는 다를 수가 있다. 생물학자가 보는 실재는 현대 물리학이 보는 실재의 세계와도 같이 “살바도르 달리의 흐물흐물 늘어진 초현실주의 시계들처럼 아주 유동적인 실재”와도 같은 것이며, “유기적 에너지의 패턴”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촉감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재구성하는 것은 신예진의 조각 작업에서 보듯이 낯설고 이질적인 형태를 띤다. 그의 조각 작업은 생물학자의 실험실에 있는 애벌레나 개구리의 표본들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조각 작업은 실험실의 표본들과 같은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니라 보기엔 약간은 징그럽고, 만지면 흘러내릴 것 같이 흐물흐물 늘어진 애벌레나 개구리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의 조각 작업은 어린 시절에 감촉을 통해 느꼈던 애벌레와 개구리의 형태를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손으로 만져서 느꼈던 애벌레와 개구리는 과학 책이나 실험실에 있는 표본들을 눈으로 본 형태와는 달리 <낯선 감촉>이나 <생명의 운동들>의 조각의 형태에서 보듯이 만지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석고상과 같이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 아니라 인간과 같이 끊임없이 숨을 쉬며, 살아가는 생명으로써 신예진의 조각 작업은 그러한 생명의 움직임을 시각적인 형태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감촉의 기억들>은 카오스와 같이 무질서하게 있으며, 사물의 덩어리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움직임이 없는 사물과 같이 느껴지던 것들이 감촉을 통해 경험하는 순간 생명과 같이 살아나는 기억의 이미지들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더 세밀하게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오르면 그 덩어리들은 그의 어린 시절 땅거미가 질 무렵 움직이지 않는 사물들이 그의 감촉을 통해 하나씩 꿈틀거리며 튀어나올 것 같은 순간들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실재는 <감촉의 기억들>의 개구리들이 뭉쳐져 있는 형태들과 같이 움직임이 없는 사물로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만지면 꿈틀거리며, 튀어나올 것 같은 미지의 덩어리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신예진의 조각 작업은 시각으로 보고 재구성하는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감촉을 통해 재구성한 사물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조각 작업은 어린 시절에 감촉으로 느껴지던 사물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지만, 사물의 세계는 그의 조각 작업에서 보듯이 눈으로 보고 우리의 인식을 통해 재구성한 세계와는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조각 작업은 감촉을 통해 재구성한 실재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시각을 통해서 재구성하는 실재의 세계에 인식과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조관용(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