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의 이중창


류주항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진화하는 흐름을 몸소 겪으며 자라온 세대이다. 21세기 현대인을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 즉 노마드의 시대라고 표현하듯,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흥미로운 시기에 그는 사진을 전공하였다. 프랑스의 패션포토그래퍼 기 부르댕 (Guy Bourdin) 의 감각적인 패션 사진이 주는 짜릿한 즐거움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의 마법 같은 빛의 표현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작가는 사진과 그림 등 시각적 환희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고 언제나 그것을 즐거워했다.

류주항은 4×5 대형 필름카메라로 도시의 밤과 낮을 찍어 디지털로 합성하는데, 6시간 이상 장노출로 찍은 밤 풍경과 낮 풍경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하루라는 시간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밤과 낮의 통제 속에 그것을 동시에 경험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밤도 낮도 아닌, 낮이면서 밤이기도 한, 현실에 존재하지만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카메라는 어느 매체보다 절대적으로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작가는 그 카메라를 통해 시간의 지점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어느 순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피사체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물한다. 작가는 서울의 도시풍경으로 작업하는데 그에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공부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이다. 낮 동안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와 공기의 미세한 밀도차이, 계절에 따른 습도와 온도의 변화로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보이는 도시는 작가에게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가장 강력한 광원인 태양이 사라진 후 마치 그 후광을 뒤쫓으려는 듯 밀려나오는 인공조명은 서울을 낮보다 화려한 도시로 변모시켰다. 마치 스스로 살아 숨쉬는 생명체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빌딩숲의 도시적 풍경,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 빽빽한 도심 한가운데 솟아있는 남산, 오래된 한옥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숨 쉬는 북촌의 모습 등은 모두 작가의 피사체가 되었으며, 작가가 의도적으로 혼합한 태양과 인공조명의 이중창으로 비로소 가장 완벽한 모습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관람자는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그들만의 특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류주항은 자신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또는 일상적으로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감각적이며 흥미로운 도시인지 느끼기를 주문한다. 6시간 이상의 장노출 동안 한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카메라와 씨름해야 하는 작가는 그 많은 시간 동안 무엇을 상상할까. 때때로 변화하는 대상에게서 정제된 이미지 한 컷을 찾아내기 위해 카메라와 함께 고군분투하는 작가는 어쩌면 그가 그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하는 세상 그 자체일 것이다.


김동현 (이화익갤러리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