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공간에 대한 사유 (2014 X-Photographers 전시에 대한 단상)


후지필름이 전 세계 차원의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X-Photographers 프로그램의 2014년 한국 진행자들이 지난 한해의 활동 결과를 모아 전시를 연다. 광모, 유별남, 임준영 등 3인이 각자의 얘기를 들고 참여했다. 각기 다른 사진 작업의 성향을 갖고 있는 우리 사진계의 중추적인 작가들이 공동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공동의 전시를 꾸렸다. 사진이 딱히 카메라의 기종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아니지만, 1930년대 이후 오랫동안 세계 사진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말 그대로 사진회사인 후지필름이 만든 카메라를 사용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리고 세 작가의 사진 작업을 굳이 한 줄로 정리하면 ‘표류하면서 우리의 주변을 떠도는 공간과 거기에 있는 대상에 대한 작가들의 사유의 결과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광모는 자신의 삶과 그 여정에서 마주치는 사물에 대한 느낌을 이미지로 만든 ‘사적 표류’라는 제목의 사진을 선보인다. 그의 사진 대부분에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때로는 극단적으로 클로즈업이 되어 있기도 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 사진 특유의 중립적인 크기로 나타나 있기도 하며, 너무나 멀리 있어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의 시선도 있다. 작가는 이런 시선과 배열을 ‘물리적 거리’와 ‘감정적 거리’라는 말로 설명한다. 당연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를 수반하며, 심리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를 수반한다. 감정적 친밀도가 높을수록 공간적으로 가까워지고 반대의 경우인 것도 당연한데, 작가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사진으로 객관화시킨다.

유별남은 인간의 유한함과 한계를 설정하는 자연의 벽과 압도하는 자연의 공간을 존중하는 자신의 세계관을 설파하는 사진을 ‘불가항력’이란 이름으로 보여준다.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하는 행위를 선한 것으로 간주하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휴머니즘이야말로 근대 인간의 대표적인 오만함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적어도 학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자연은 인류가 그렇게 만만하게 볼만큼 녹녹한 상대가 아니다. 작가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스케일을 스케일 큰 사진으로 제시한다. “낙원에의 동경은 인간의 존재를 불안해하는 나약한 인간의 욕망일 뿐이다. 인간의 땅은 낙원과 아주 거리가 멀다”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과 함께.

임준영은 근대사회가 만든 스펙타클의 전형인 뮤지엄과 디테일이 숨어있는 건축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Museum Project'와 'Architectural Form'이란 타이틀을 달아 전시한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찍은 사진에서 작가는 근대의 지식 창고이자 서비스 기관인 대형 뮤지엄이 기능하고 작동하는 과정과 공간적 상황을 아주 작은 사진 즉 2차원의 작은 공간으로 환원시킨다. 또 자연을 대신해서 우리의 환경이 되어버린 현대 건축물의 디테일이 갖는 공간적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라는 현대 디자인의 격언을 확인해 보는 자리일 수 있겠다.

사진은 단순한 사실에 대한 객관적 기록이거나 대상의 복제가 아닌 사진을 찍는 사진가가 사물을 보는 한 방식(A Way of Seeing)의 드러남이라는 사실은 이런 저런 학문적 논의와 사진가들의 작업을 통해 이미 입증된 일이다. 이런 논의는 카메라 또는 그것이 만드는 이미지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접근은 아니고,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진가들의 대상을 대하는 태도와 시공간적 선택 그리고 접근방법들에 관한 문제의 정리이다. 사진에 대한 대다수의 인식이 그 본질을 단순한 사실성과 기록성 그리고 복제성에 두고 있는 대중적 인식을 고려해보면 매우 의미 있는 규정임에는 틀림없다. 세 작가의 사진은 이러한 사진의 본질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예이다.

우리 각자는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된 사진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개인적인 상일 수 있고, 어떤 것은 우리 경험과 문화 속에 편입되어 있는 이미지일 수 있다. 이것들은 우리의 정신적 세계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아이템이 되고 있다. 한편 사진은 과학의 속하는 것이자, 기록의 역사에 속하는 것이기도 한다. 사진은 개인에 대한 문서화 작업에 있어서, 즉각적 상황에서 한발 물러서서 사회적 증거를 제시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예술을 재생산하는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독자적 권리를 가진 하나의 예술의 형태로 이용된다. 실존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실제를 기록하기도 하는 사진의 이중성은 광모, 유별남, 임준형 등 세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이다.

사실 사진은 우리 문화의 모든 측면에 걸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은 조잡하거나 혹은 세련될 수 있고, 능란하거나 반대로 거칠 수 있으며, 기교가 뛰어나거나 아니면 단순할 수도 있고, 긍정적 감정을 야기하거나 그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에서 정치/이데올로기는 알게 혹은 모르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고, 관객은 사진에서 자신의 그것을 확인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주제로 또 다른 방법으로 했던 작업을 이 전시에 선보이지만, 관객 각자의 세계관과 감정은 이들의 작품을 또 다른 세계로 이끌 것으로 믿는다.

글 / 박주석 (명지대 교수, 사진사)